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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디어연구소 No.5]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정보 접근 및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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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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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디어연구소] 주간 정책 브리핑 No.5
<미디서초점 리뷰>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정보 접근 및 표현의 자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현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고 있는 각종 대책이 인터넷 공간의 여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의혹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1~2개월 동안 정부로부터 쏟아지고 있는 각종 발언과 대책, 그리고 행동은 이런 의혹과 비판의 타당성을 시급히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연구소는 비차별적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라는 시각에서 "망 중립성" 개념에 접근하면서, 최근의 상황과 현행법의 허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주로 망 사업자와 망 사업자,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사이에서 협소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내의 "망 중립성" 논쟁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다.
현 정부의 각종 인터넷 공간 관련 발언, 대책, 그리고 행동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5월 3일 포털 다음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관련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성 댓글이 안 보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국세청은 지난 5월 22일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여론이 만개하고 있는 포털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다. 5월 24일 다음은 "쥐새.끼"를 검색 금칙어로 지정했다가, 네티즌의 항의에 밀려 24시간 만에 해제한다.
5월 28일 박명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은 확산 속도가 빨라서 매일 모니터링하고 즉시 심의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같은날 방통심의위는 다음에 개설된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실린 한 게시글에 대해 "언어 순화 및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를 내렸다. 지난 6월 2일 언론에 흘러나온 방통위의 로드맵 "세계일류 방송통신 실천계획"에는 방송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심의 기준을 재정비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방송계에서는 방송 프로그램 심의 기준이 이른바 "기계적 공정성"을 강요해 제작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를 제기한다. 또한 실천계획에는 음란 등 불법 UCC를 차단하기 위해 "UCC에 대한 모니터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할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 역시 인터넷 공간의 내용 통제로 흐를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월 16일 "이번에 단행되는 조직 개편에 인터넷 관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엔 인터넷 정책보좌관으로 다음 전 부사장을 내정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같은 날 한나라당은 포털사이트 등에 올라 있는 언론 기사가 일정 개수의 이상의 리플이 붙거나 조회수가 갑자기 늘어날 때 여론의 반응을 확인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인터넷 사이드카" 개념을 도입할 계획을 발표 한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정보통신망법)과 인터넷 공간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현행법은 정보통신망법이다. 방통위는 지난 5월3일 댓글에 대한 블라인드 처리를 다음에 요구하면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3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관리하는 망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블라인드(댓글을 안 보이게 하는 기능) 처리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며 방통위의 요구에는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포털은 물론 ISP,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 등을 모두 일컫는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보통신망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 하나가 법 제 44조의 2 제2항이다.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주장만 해도, (포털이나 ISP와 같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제44조의 2 제4항은 포털이나 ISP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해당 정보나 게시물에 대한 접근을 임시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초 제44조의 2나 제44조의 3은 인터넷에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은 네티즌이 해당 게시물의 신속한 삭제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랜드 파업 관련 게시물이 이랜드 회사 쪽의 요청으로 임시 삭제된 사례가 상징하듯,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는 이른바 "삭제명령권"으로 통용되는 제44조의 7이 상징한다. 쉽게 요약하면, 법원의 판결도 없이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게시물의 삭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특히 제1항 2호나 3호의 경우 "이현령 비현령"이 되기 쉽다. 제44조의 7에 대해서는, 사전에 이뤄지지 않을 뿐이지 국가권력에 의한 "사후 검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정보통신망법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통신사업자와 ISP 간의 규제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과정에서 처음 언급됐으며, 1996년 미국이 개정한 통신법이 인터넷 환경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여 이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에 대한 정의는 제 각각이다. 하지만 주요한 논쟁의 양상은 망 사업자와 망 사업자,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에 주로 이뤄지고 있다. 망 사업자 간에는 서로의 망에 대한 상호접속,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에는 망 개방과 트래픽의 동등 처리 등이 주요 쟁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망 중립성 개념의 핵심에 "이용자의 비차별적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가 자리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이런 시각에서 현 정부와 방통위가 보이는 행동과 대책, 앞서 언급한 정보통신망법의 문제조항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용자의 비차별적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망 중립성의 핵심 논리는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망 사업자나 ISP, 포털 등)가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발생하는 불법적인 대화, 저작권 침해 행위, 기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발생하는 불법적인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들 전달자는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이뤄지는 갖가지 소통 행위를 감시하거나 봉쇄하고 싶은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정보통신망법에는 포털이나 ISP, 망 사업자가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이뤄지는 소통 행위를 감시하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제44조 제2항은 비록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소통 행위를 감시하도록 유도한다. 이 조항에 기대어 현 정부가 포털이나 ISP에 여러 가지 요구를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 5월 2일 다음에 댓글 삭제를 요구할 때, 방통위가 제시한 근거인 제44조의 3도 그렇다. 이 조항은 포털이나 ISP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에 해당한다고 볼 경우, 해당 게시물에 대한 접근 제한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벌어지는 소통 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법 제44조의 2 제6항은 이런 유인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포털이나 ISP 등이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포털이나 ISP에 삭제나 임시조치를 의무화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삭제 등을 요청받을 경우, 포털이나 ISP가 해당 게시물을 반드시 삭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임시 차단할 경우 손배책임을 면제받거나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발생한 이랜드 파업 게시물에 대한 삭제가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 6월12일 네티즌 광고 중지 운동을 "전대미문의 테러", "사이버 테러"라고 비난하며 요리커뮤니티 "82cook"에 보낸 공문에서 이 사이트 회원들이 게시판에 올린 글들의 삭제를 요구하고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에 대해 법적 대응을 예고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인터넷 사이드카(여론 민감도 체크 프로그램)" 역시 포털이나 ISP의 중립적 전송자 지위를 한층 더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행해서는 안 될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른 프로그램의 의무적 설치 강요이든, 자발적인 설치 유도이든, 그 결과는 포털이나 ISP가 국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이뤄지는 소통 행위를 감시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지난 5월28일 다음 카페 게시글에 대한 방통위의 "언어 순화 및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처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정의 남용으로 이어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특정 포털의 은근한 여론 호도 의혹이 무성했던 게 사실이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수용자들이 많아진 터이기에, 포털의 사소한 날개짓이 폭풍으로 변하는 "나비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포털이나 ISP가 비판적인 견해를 잠재우기 위해 국가가 조를 수 있는 "목줄"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목줄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국가의 노골적인 삭제명령권(정보통신법 제44조의 7)을 제어하는 노력과 함께 병행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비차별적인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가 망 중립성 개념에 불어넣는 생명력에 해당한다.
<해외방송 동향>
프랑스 공영방송 TF1(Télévision Française 1)의 민영화, 그 사회적 영향
이제 촛불은 공영방송 KBS로 향했다. 촛불은 현 정권의 공영방송 흔들기 전략에 일침을 가하며 공영방송 수호를 외치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범정부적 공세는 이미 예고된 터였다. 그 시나리오의 결말이 KBS2TV와 MBC의 민영화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KBS2TV든 MBC든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갖는 의미는 단지 공영방송 채널 하나를 민영화시키는 것이라는 현상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영화는 우리나라 공영방송 구조, 나아가 방송․통신 산업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가장 유사한 프랑스 TF1의 민영화 사례에서 유추할 수 있다. 다음은 연구소 수행한 프로젝트 내용의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TF1의 민영화
TF1 채널은 1974년 7월 8일에 설립되었다.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는 TV와 Radio를 관장하는 공영기관 ORTF(Office de radiodifusion télévision française)를 1974년 8월 7일 개혁법으로 통과시키면서 7개의 운영기관으로 나누었는데 TF1이 그 일환으로 창출되었다. 과거부터 프랑스는 방송의 공공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국민의 정서를 중요시하여 방송의 사적 소유를 오랫동안 금지해왔다. 그러나 사적 자본이 비대해지고 국가주의가 퇴조하면서 사적 자본도 매체 등에 진출할 수 있게 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프랑스 시청자가 국가 주도의 방송에 대해 변화를 추구한 것도 원인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프랑스의 공영방송 민영화 계획은 원래 세 개의 공영 채널을 모두 민영화하겠다는 파격적인 구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급진적인 민영화 계획은 곧 정부 내에서 조차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고, 1986년 6월 좌파 미테랑 대통령 시기의 우파 자크 시라크가 다시 총리가 되면서 3개의 공영 방송사 중 1개를 민영화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TF1이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된 원인은 정치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파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과시할 상징적인 수단이 필요했고, 이것이 TF1의 민영화로 연결되었다는 의미다. 실제 자크 시라크 총리는 1986년 5월 14일 “좌파에 가장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TF1을 민영화할 것이라고 최종 발표하였다.
TF1의 민영화로 인한 폐해
TF1의 민영화 이후 방송 채널들 간의 경쟁은 격렬한 양상을 띠었으며, 많은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이다. 한 채널이 파산한 것 이외에도, 편성에 있어서 픽션 및 오락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팽창했고 프로그램의 질 저하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제작비의 급격한 상승과 이에 따른 방송사의 재정 압박은 다시금 광고 수입 확장을 위한 방송사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만들어 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다면, 경쟁은 방송사의 편성 관행과 제도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주 시청 시간대는 주로 외국산 픽션물로만 채워졌으며, 방송법이 자국산 프로그램의 편성 쿼터를 법 조항으로 도입하는 규제적 조치가 취해지기도 하였다. 각종 시사 토론 및 교양 프로그램은 심야 시간대로 밀려났다. 이 시기 프랑스의 민영방송에 의해 촉발된 경쟁은 결코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과열 경쟁으로 인한 방송사의 파산 초래
1987년 TF1의 민영화 이후 프랑스의 민영방송 간 경쟁, 특히 TF1과 라쌩크(La Cinq)의 경쟁은 과도한 양상을 나타냈다. 당시 광고에 의존하는 민영방송 채널이 세 개나 생겼고, 제한적인 광고시장의 규모로 인해 격렬한 경쟁 및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가 유발되었다. TF1은 민영화 직후, 한동안은 기존의 편성 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TF1의 사장인 프랑시스 부이그는 자신의 상업적 야심을 공공연히 천명하였다. 그는 “우리는 민영방송이다. 즉, 우리는 상업방송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방송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이거나 교육적인 프로그램 들이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즉, 값싼 헐리우드 프로그램 수입에 더 관심을 갖고 보도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연성화되는 경향이 예고된 것이며, 나아가 방송의 편성권이 사주에 의해 좌우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민영방송사인 라쌩크(La Cinq)는 “매일 저녁마다 한 편의 영화”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극장용 영화, 픽션물 및 스포츠 중계 분야에서 TF1과 첨예하게 경쟁하였다. 그 결과, La Cinq는 1987년 8.1%, 1988년 11%, 1989년 13.3%의 시청자 점유율을 보이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에 민영화로 새로 출범하게 된 TF1 또한 자신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투자로 맞대응해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1991년 프랑스에는 유례없는 광고 시장의 침체가 찾아왔다. 위기는 TF1과의 과도한 경쟁을 통해 재정난을 이기지 못한 La Cinq로부터 시작되었다. 1991년 12월 17일, La Cinq는 전 직원의 2/3에 달하는 567명을 해고하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하였다. 게다가 연말에는 대주주인 아셰트가 더 이상의 경영 참여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1992년 La Cinq는 완전히 파산하였다. 결국 1992년 4월 12일 La Cinq가 방송을 중단하기 전까지 TF1과 La Cinq 양사의 시청률과 광고경쟁은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경쟁 속에서 오락 프로그램 증가와 프로그램의 질 하락이라는 병폐를 유발하였다. 그리고 결국 경쟁에서 도태된 La Cinq는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 위주의 편성과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
TF1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모기업인 Bouygues 그룹은 TF1의 채널 특성을 ‘문화’로 강조하며 ‘문화 전문 방송’으로의 정체성을 갖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Bouygues 그룹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것처럼 Bouygues그룹의 회장 Francis Bouygues는 민영화 이후 문화엔 관심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이 상업화된 것도 사실이다. TF1은 민영화 이전에는 뉴스 이후, 시청률도 좋지 않더라도 바로 이어 정치 대담 프로그램을 방영하곤 하였다. 그러나 공영방송에서 방영하는 Envoyé spécial이나 Thalassa 같은 의미 있고 분석 깊은 취재물이 거의 없다. 물론 민영화 이후에도, 심층 취재물(le droit de savoir)이나 정치대담 프로그램(sept sur sept)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재가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할 연성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쇼킹하고 충격적인 사건만 다룬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어린이를 위한 방송 시간에 최초로 나 와 같은 잔인한 일본 만화시리즈를 방영한 것도 대표적인 상업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점차 , , , 과 같은 돈과 상품을 주는 게임 프로그램을 공영방송 시절에 비해 대폭 증가해 편성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TF1은 비록 노년층 시청자들을 잃어버릴 지라도 구매력 있는 젊은 시청자들을 확보함으로써 광고 시간을 더 높은 단가에 판매하고자 하는 편성 전략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주 시청 시간대인 저녁 6-8시 사이에는 게임, 토크쇼 등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집중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1991년 이후 몇 년 동안 TF1은 1주일 가운데 4일의 저녁 시간대를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 편성에 할애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스타 시스템’은 작동하였고,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이런 프로그램의 제작비 역시 두 배 이상 상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저널리즘 기능의 훼손
TF1이 민영화 되면서, 종사자들의 인사해고는 없었다. 그러나 Bouygues 그룹이 민영화 이후, 제일 중점에 둔 것은 언론권을 장악하기 위해 보도국 인력을 거의 모두 교체시켰다는 것이다. 20시 뉴스앵커를 Bruno Masure에서 Patrick Poivre d'arvor로 교체하고, 13시 뉴스 앵커는 Yves Mourousi에서 Jean-pierre Pernaud로 교체시켰다. 프랑스에서 뉴스 앵커들은 뉴스의 흐름이나 주제선정에 있어서 책임자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의 보도 기능을 전면 재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뉴스의 성향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미디어 전문기자들도 TF1 민영화 이후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성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나 질은 많이 떨어졌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민영화 전 뉴스앵커들은 국내외 이슈들을 심층적으로 다루었으나, 민영화 이후 Bouygues 측은 국민들의 오락성과 이해력을 위해 복잡한 전쟁이나 해외 사회문제를 되도록 배재시키려고 노력 했다고 한다. Yves Mourousi를 대신해 기용한 Jean-pierre Pernaut 앵커는 주로 프랑스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보기 편한 프랑스 전통이나 재미 위주의 뉴스를 많이 선정해 다루었다. 즉, 시청자들이 관심을 안 보이는 국제뉴스는 많이 삭제되었고, 쇼킹한 사회문제나 흥미위주의 리포트가 많아졌다. 세계정세의 흐름 보다는 민영화 이후 오락성 뉴스 혹은 프랑스의 전통, 지방 축제 아니면 지방 특산품 등 온통 연성화된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저널리즘 원칙의 훼손에 대한 부분도 민영화 이후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TF1의 Michel Polac 기자는 CNCL(당시 방송위원회)이 방송언론에 대한 규제책임을 양심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소재의 심층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Bouygues 건축 그룹의 의심스런 로비 의혹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가 TF1 측에서 해고되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당시 Michel Polac 기자는 "기자들이 TF1, CNCL, Bouygues그룹을 비평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이 사건에 대해 Le Monde 신문은 Michel polac 기자가 Bouygues 그룹의 시멘트에 눌려 죽는 만평으로 기사를 썼다.
자본에 의한 권력 기구화
1980년대 TF1의 민영화 등으로 인한 방송 구조개혁이 낳은 또 다른 중요한 결과는 TF1이 확보하게 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들 수 있다. 오늘날 프랑스 방송에서 TF1의 지배력은 단지 경제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학자 제롬 부르동(Jérôme Bourdon)은, TF1은 “시청자의 이름으로 프랑스를 정복하기 시작했다.…프랑스는 TF1으로 대표되며, 마침내 TF1이 프랑스를 움직이게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TF1은 하나의 권력 집단화됨으로써 방송을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정치에 종속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 Liberation 신문의 미디어 전문기자 Isabelle Robertz와 주간지 Telerama의 Valerie Hurier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실제 TF1의 사주 Bouygues 그룹은 항상 좌파든 우파든 현 정권에 우호적인 친정부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대선 때마다 여론 지지율이 제일 높은 후보를 지지한다. Bouygues 그룹은 프랑스에서 재계순위 12번째 회사이므로 그 파워를 유지하려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야 하며, 현 정부와 항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가까운 사람이 정권을 잡고 있어야 한다. 결코 공영방송 보도국에 비해 더 독립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 Isabelle Robertz
"언뜻 보면 TF1이 민영이라 정부의 영향을 덜 받아 기자들이 공영방송에 비해 더 독립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TF1은 사기업이고 광고비로만 먹고 사는 그들로서는 기업경제에 무척 민감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등을 지고 살 순 없다. 공영방송 기자들과는 다른 형태로 정치계에 묶여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누가 더 독립적이라고 자로 재기 어렵다."
- Valerie Hurier
TF1의 민영화는 분명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을 상징하는 조치였지만, 그 이후 TF1 자체가 아무런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개인인 프랑시스 부이그의 권력 도구가 되어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민영화는 곧 자본에 의한 미디어의 통제 및 미디어의 권력 기구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Isabelle Robertz와 Valerie Hurier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지금의 TF1사주인 bouygues 건축 그룹은 너무나 커졌다. 파워가 너무 강해서 방송위원회도 견제하기에 급급하다. 일부 준수사항에 문제가 있어도 계속 송출허가를 내준다. 민영화 당시 반대했던 전 총리 Lionel Jospin을 비롯하여 좌파정치인들도 정권을 잡으면 다시 공영화 시키겠다고 공약을 했으나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현재도 TF1의 공영화는 아무도 이야기 안 한다. 지금 Bouygues 그룹 회장인 Martin Bouygues는 현 대통령 Sarkozy와 절친한 친구다. TF1의 앞날은 탄탄하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정치인들도 방송과 등을 지고는 유명정치인이 되기 힘들다. 대선이나 총선 시 선거특별방송을 보면 유명 정치인들은 공영방송인 France2 혹은 France3 보다는 TF1에 먼저 나가려고 한다. TF1과 정치인들과의 공생관계는 튼튼하다."
- Isabelle Robertz
“TF1의 사주 Bouygues 그룹은 무척 큰 회사이다. 그 때문에 그들의 비즈니스 제국을 유지 시키려면 언론이 필요했고, 그래서 TF1을 인수했으며, 프랑스 1위의 채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정치계에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날 TF1을 다시 공영화 한다든지 비위를 건드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 Valerie Hurier
공영방송의 정체성 상실 초래
TF1의 민영화에 따른 방송사간 과열 경쟁은 공영방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과다한 광고유치와 시청률 경쟁 속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것은 프랑스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코 공영방송이 시청률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좁은 의미만은 아니다. 민영방송들과 맞서면서 공영방송의 시청률이 하락한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보다는 과열경쟁의 시대에 공영방송이 스스로의 역할과 위상, 향후 발전 방향과 관련된 총체적 전망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공영방송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개입’하게 된 국가 또한 해답을 찾기 위해 10년 이상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제는 풀기 힘든 과제로 남아 있다.
1989년 프랑스의 방송위원회인 CSA가 출범하면서, CSA는 가장 먼저 공영방송 전체의 비전을 모색하는 일을 추진하며, 공영방송 A2와 FR3의 사장 인선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CSA는 민영화 이전에 TF1의 상업적 성공 기틀을 마련했던 에르베 부르주(Hervé Bourges)에게 양사를 총괄하는 사장직을 맡겼다. 공영방송의 새로운 책임자 에르베 부르주는 당시 벌어지고 있던 채널 간 경쟁에서 공영방송이 승리하는 방식만이 공영방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부르주는 먼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공영방송에 광고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는 그동안 방송광고를 사실상 독점하던 TF1과 “광고 없는 텔레비전"을 주창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등의 지식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결국 1989년에 실현되었다.
광고는 A2와 FR3의 주 시청 시간대에 본격적으로 편성되기 시작하였다. 광고의 유입과 더불어 공영 채널에서 마저 다큐멘터리, 시사 토론처럼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 대신 각종 매거진, 오락 프로그램이 주 시청 시간대를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지식인들은 공영방송을 공영방송이 아닌 “국가 상업 방송”이라고 비판하였다.
이 후에도 프랑스 공영방송은 민영방송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나, 90년대 초반 걸프전 보도에 있어서도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은 TF1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프랑스 공영방송의 민영방송과의 경쟁정책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먼저, 공영방송의 적극적인 경쟁력 제고 전략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내내 공영방송과 TF1의 시청률 격차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1987년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공영방송의 시청자 점유율은 절반가량으로 대폭 후퇴하였으며, 광고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비극적인 결과는 공영방송이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채널 정체성과 미래의 비전을 상실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편성과 프로그램 수준의 측면에서 공영방송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하면서, 그에 비례해 시청자들의 불만은 계속 높아만 갔다. 물론 거기에는 공영방송에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이 정작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을 외면한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만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주 시청 시간대의 유사한 오락 프로그램만을 본다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차이를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데 있었다.
<미디서초점 리뷰>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정보 접근 및 표현의 자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현 정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고 있는 각종 대책이 인터넷 공간의 여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의혹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1~2개월 동안 정부로부터 쏟아지고 있는 각종 발언과 대책, 그리고 행동은 이런 의혹과 비판의 타당성을 시급히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연구소는 비차별적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라는 시각에서 "망 중립성" 개념에 접근하면서, 최근의 상황과 현행법의 허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주로 망 사업자와 망 사업자,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사이에서 협소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내의 "망 중립성" 논쟁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다.
현 정부의 각종 인터넷 공간 관련 발언, 대책, 그리고 행동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5월 3일 포털 다음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관련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성 댓글이 안 보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국세청은 지난 5월 22일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여론이 만개하고 있는 포털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다. 5월 24일 다음은 "쥐새.끼"를 검색 금칙어로 지정했다가, 네티즌의 항의에 밀려 24시간 만에 해제한다.
5월 28일 박명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은 확산 속도가 빨라서 매일 모니터링하고 즉시 심의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같은날 방통심의위는 다음에 개설된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실린 한 게시글에 대해 "언어 순화 및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를 내렸다. 지난 6월 2일 언론에 흘러나온 방통위의 로드맵 "세계일류 방송통신 실천계획"에는 방송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심의 기준을 재정비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방송계에서는 방송 프로그램 심의 기준이 이른바 "기계적 공정성"을 강요해 제작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를 제기한다. 또한 실천계획에는 음란 등 불법 UCC를 차단하기 위해 "UCC에 대한 모니터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할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 역시 인터넷 공간의 내용 통제로 흐를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월 16일 "이번에 단행되는 조직 개편에 인터넷 관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다. 여기엔 인터넷 정책보좌관으로 다음 전 부사장을 내정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같은 날 한나라당은 포털사이트 등에 올라 있는 언론 기사가 일정 개수의 이상의 리플이 붙거나 조회수가 갑자기 늘어날 때 여론의 반응을 확인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인터넷 사이드카" 개념을 도입할 계획을 발표 한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정보통신망법)과 인터넷 공간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현행법은 정보통신망법이다. 방통위는 지난 5월3일 댓글에 대한 블라인드 처리를 다음에 요구하면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3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관리하는 망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블라인드(댓글을 안 보이게 하는 기능) 처리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며 방통위의 요구에는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포털은 물론 ISP,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 등을 모두 일컫는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보통신망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 하나가 법 제 44조의 2 제2항이다.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주장만 해도, (포털이나 ISP와 같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제44조의 2 제4항은 포털이나 ISP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해당 정보나 게시물에 대한 접근을 임시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초 제44조의 2나 제44조의 3은 인터넷에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은 네티즌이 해당 게시물의 신속한 삭제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랜드 파업 관련 게시물이 이랜드 회사 쪽의 요청으로 임시 삭제된 사례가 상징하듯,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는 이른바 "삭제명령권"으로 통용되는 제44조의 7이 상징한다. 쉽게 요약하면, 법원의 판결도 없이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게시물의 삭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특히 제1항 2호나 3호의 경우 "이현령 비현령"이 되기 쉽다. 제44조의 7에 대해서는, 사전에 이뤄지지 않을 뿐이지 국가권력에 의한 "사후 검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과 정보통신망법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통신사업자와 ISP 간의 규제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과정에서 처음 언급됐으며, 1996년 미국이 개정한 통신법이 인터넷 환경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여 이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에 대한 정의는 제 각각이다. 하지만 주요한 논쟁의 양상은 망 사업자와 망 사업자,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에 주로 이뤄지고 있다. 망 사업자 간에는 서로의 망에 대한 상호접속,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에는 망 개방과 트래픽의 동등 처리 등이 주요 쟁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망 중립성 개념의 핵심에 "이용자의 비차별적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가 자리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이런 시각에서 현 정부와 방통위가 보이는 행동과 대책, 앞서 언급한 정보통신망법의 문제조항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용자의 비차별적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망 중립성의 핵심 논리는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망 사업자나 ISP, 포털 등)가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발생하는 불법적인 대화, 저작권 침해 행위, 기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발생하는 불법적인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들 전달자는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이뤄지는 갖가지 소통 행위를 감시하거나 봉쇄하고 싶은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정보통신망법에는 포털이나 ISP, 망 사업자가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이뤄지는 소통 행위를 감시하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제44조 제2항은 비록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소통 행위를 감시하도록 유도한다. 이 조항에 기대어 현 정부가 포털이나 ISP에 여러 가지 요구를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 5월 2일 다음에 댓글 삭제를 요구할 때, 방통위가 제시한 근거인 제44조의 3도 그렇다. 이 조항은 포털이나 ISP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에 해당한다고 볼 경우, 해당 게시물에 대한 접근 제한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벌어지는 소통 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법 제44조의 2 제6항은 이런 유인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포털이나 ISP 등이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포털이나 ISP에 삭제나 임시조치를 의무화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삭제 등을 요청받을 경우, 포털이나 ISP가 해당 게시물을 반드시 삭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임시 차단할 경우 손배책임을 면제받거나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발생한 이랜드 파업 게시물에 대한 삭제가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 6월12일 네티즌 광고 중지 운동을 "전대미문의 테러", "사이버 테러"라고 비난하며 요리커뮤니티 "82cook"에 보낸 공문에서 이 사이트 회원들이 게시판에 올린 글들의 삭제를 요구하고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에 대해 법적 대응을 예고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인터넷 사이드카(여론 민감도 체크 프로그램)" 역시 포털이나 ISP의 중립적 전송자 지위를 한층 더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행해서는 안 될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른 프로그램의 의무적 설치 강요이든, 자발적인 설치 유도이든, 그 결과는 포털이나 ISP가 국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이뤄지는 소통 행위를 감시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지난 5월28일 다음 카페 게시글에 대한 방통위의 "언어 순화 및 과장된 표현의 자제 권고"처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정의 남용으로 이어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특정 포털의 은근한 여론 호도 의혹이 무성했던 게 사실이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수용자들이 많아진 터이기에, 포털의 사소한 날개짓이 폭풍으로 변하는 "나비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포털이나 ISP가 비판적인 견해를 잠재우기 위해 국가가 조를 수 있는 "목줄"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목줄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국가의 노골적인 삭제명령권(정보통신법 제44조의 7)을 제어하는 노력과 함께 병행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비차별적인 정보 접근과 표현의 자유가 망 중립성 개념에 불어넣는 생명력에 해당한다.
<해외방송 동향>
프랑스 공영방송 TF1(Télévision Française 1)의 민영화, 그 사회적 영향
이제 촛불은 공영방송 KBS로 향했다. 촛불은 현 정권의 공영방송 흔들기 전략에 일침을 가하며 공영방송 수호를 외치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범정부적 공세는 이미 예고된 터였다. 그 시나리오의 결말이 KBS2TV와 MBC의 민영화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KBS2TV든 MBC든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갖는 의미는 단지 공영방송 채널 하나를 민영화시키는 것이라는 현상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영화는 우리나라 공영방송 구조, 나아가 방송․통신 산업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가장 유사한 프랑스 TF1의 민영화 사례에서 유추할 수 있다. 다음은 연구소 수행한 프로젝트 내용의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TF1의 민영화
TF1 채널은 1974년 7월 8일에 설립되었다.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는 TV와 Radio를 관장하는 공영기관 ORTF(Office de radiodifusion télévision française)를 1974년 8월 7일 개혁법으로 통과시키면서 7개의 운영기관으로 나누었는데 TF1이 그 일환으로 창출되었다. 과거부터 프랑스는 방송의 공공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국민의 정서를 중요시하여 방송의 사적 소유를 오랫동안 금지해왔다. 그러나 사적 자본이 비대해지고 국가주의가 퇴조하면서 사적 자본도 매체 등에 진출할 수 있게 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프랑스 시청자가 국가 주도의 방송에 대해 변화를 추구한 것도 원인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프랑스의 공영방송 민영화 계획은 원래 세 개의 공영 채널을 모두 민영화하겠다는 파격적인 구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급진적인 민영화 계획은 곧 정부 내에서 조차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고, 1986년 6월 좌파 미테랑 대통령 시기의 우파 자크 시라크가 다시 총리가 되면서 3개의 공영 방송사 중 1개를 민영화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TF1이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된 원인은 정치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파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과시할 상징적인 수단이 필요했고, 이것이 TF1의 민영화로 연결되었다는 의미다. 실제 자크 시라크 총리는 1986년 5월 14일 “좌파에 가장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TF1을 민영화할 것이라고 최종 발표하였다.
TF1의 민영화로 인한 폐해
TF1의 민영화 이후 방송 채널들 간의 경쟁은 격렬한 양상을 띠었으며, 많은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이다. 한 채널이 파산한 것 이외에도, 편성에 있어서 픽션 및 오락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팽창했고 프로그램의 질 저하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제작비의 급격한 상승과 이에 따른 방송사의 재정 압박은 다시금 광고 수입 확장을 위한 방송사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만들어 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다면, 경쟁은 방송사의 편성 관행과 제도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주 시청 시간대는 주로 외국산 픽션물로만 채워졌으며, 방송법이 자국산 프로그램의 편성 쿼터를 법 조항으로 도입하는 규제적 조치가 취해지기도 하였다. 각종 시사 토론 및 교양 프로그램은 심야 시간대로 밀려났다. 이 시기 프랑스의 민영방송에 의해 촉발된 경쟁은 결코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과열 경쟁으로 인한 방송사의 파산 초래
1987년 TF1의 민영화 이후 프랑스의 민영방송 간 경쟁, 특히 TF1과 라쌩크(La Cinq)의 경쟁은 과도한 양상을 나타냈다. 당시 광고에 의존하는 민영방송 채널이 세 개나 생겼고, 제한적인 광고시장의 규모로 인해 격렬한 경쟁 및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가 유발되었다. TF1은 민영화 직후, 한동안은 기존의 편성 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TF1의 사장인 프랑시스 부이그는 자신의 상업적 야심을 공공연히 천명하였다. 그는 “우리는 민영방송이다. 즉, 우리는 상업방송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방송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이거나 교육적인 프로그램 들이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즉, 값싼 헐리우드 프로그램 수입에 더 관심을 갖고 보도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연성화되는 경향이 예고된 것이며, 나아가 방송의 편성권이 사주에 의해 좌우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민영방송사인 라쌩크(La Cinq)는 “매일 저녁마다 한 편의 영화”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극장용 영화, 픽션물 및 스포츠 중계 분야에서 TF1과 첨예하게 경쟁하였다. 그 결과, La Cinq는 1987년 8.1%, 1988년 11%, 1989년 13.3%의 시청자 점유율을 보이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에 민영화로 새로 출범하게 된 TF1 또한 자신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투자로 맞대응해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1991년 프랑스에는 유례없는 광고 시장의 침체가 찾아왔다. 위기는 TF1과의 과도한 경쟁을 통해 재정난을 이기지 못한 La Cinq로부터 시작되었다. 1991년 12월 17일, La Cinq는 전 직원의 2/3에 달하는 567명을 해고하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하였다. 게다가 연말에는 대주주인 아셰트가 더 이상의 경영 참여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1992년 La Cinq는 완전히 파산하였다. 결국 1992년 4월 12일 La Cinq가 방송을 중단하기 전까지 TF1과 La Cinq 양사의 시청률과 광고경쟁은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경쟁 속에서 오락 프로그램 증가와 프로그램의 질 하락이라는 병폐를 유발하였다. 그리고 결국 경쟁에서 도태된 La Cinq는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 위주의 편성과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
TF1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모기업인 Bouygues 그룹은 TF1의 채널 특성을 ‘문화’로 강조하며 ‘문화 전문 방송’으로의 정체성을 갖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Bouygues 그룹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것처럼 Bouygues그룹의 회장 Francis Bouygues는 민영화 이후 문화엔 관심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이 상업화된 것도 사실이다. TF1은 민영화 이전에는 뉴스 이후, 시청률도 좋지 않더라도 바로 이어 정치 대담 프로그램을 방영하곤 하였다. 그러나 공영방송에서 방영하는 Envoyé spécial이나 Thalassa 같은 의미 있고 분석 깊은 취재물이 거의 없다. 물론 민영화 이후에도, 심층 취재물(le droit de savoir)이나 정치대담 프로그램(sept sur sept)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재가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할 연성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쇼킹하고 충격적인 사건만 다룬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어린이를 위한 방송 시간에 최초로
저널리즘 기능의 훼손
TF1이 민영화 되면서, 종사자들의 인사해고는 없었다. 그러나 Bouygues 그룹이 민영화 이후, 제일 중점에 둔 것은 언론권을 장악하기 위해 보도국 인력을 거의 모두 교체시켰다는 것이다. 20시 뉴스앵커를 Bruno Masure에서 Patrick Poivre d'arvor로 교체하고, 13시 뉴스 앵커는 Yves Mourousi에서 Jean-pierre Pernaud로 교체시켰다. 프랑스에서 뉴스 앵커들은 뉴스의 흐름이나 주제선정에 있어서 책임자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의 보도 기능을 전면 재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뉴스의 성향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미디어 전문기자들도 TF1 민영화 이후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독립성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나 질은 많이 떨어졌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민영화 전 뉴스앵커들은 국내외 이슈들을 심층적으로 다루었으나, 민영화 이후 Bouygues 측은 국민들의 오락성과 이해력을 위해 복잡한 전쟁이나 해외 사회문제를 되도록 배재시키려고 노력 했다고 한다. Yves Mourousi를 대신해 기용한 Jean-pierre Pernaut 앵커는 주로 프랑스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보기 편한 프랑스 전통이나 재미 위주의 뉴스를 많이 선정해 다루었다. 즉, 시청자들이 관심을 안 보이는 국제뉴스는 많이 삭제되었고, 쇼킹한 사회문제나 흥미위주의 리포트가 많아졌다. 세계정세의 흐름 보다는 민영화 이후 오락성 뉴스 혹은 프랑스의 전통, 지방 축제 아니면 지방 특산품 등 온통 연성화된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저널리즘 원칙의 훼손에 대한 부분도 민영화 이후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TF1의 Michel Polac 기자는 CNCL(당시 방송위원회)이 방송언론에 대한 규제책임을 양심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소재의 심층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Bouygues 건축 그룹의 의심스런 로비 의혹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가 TF1 측에서 해고되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당시 Michel Polac 기자는 "기자들이 TF1, CNCL, Bouygues그룹을 비평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이 사건에 대해 Le Monde 신문은 Michel polac 기자가 Bouygues 그룹의 시멘트에 눌려 죽는 만평으로 기사를 썼다.
자본에 의한 권력 기구화
1980년대 TF1의 민영화 등으로 인한 방송 구조개혁이 낳은 또 다른 중요한 결과는 TF1이 확보하게 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들 수 있다. 오늘날 프랑스 방송에서 TF1의 지배력은 단지 경제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언론학자 제롬 부르동(Jérôme Bourdon)은, TF1은 “시청자의 이름으로 프랑스를 정복하기 시작했다.…프랑스는 TF1으로 대표되며, 마침내 TF1이 프랑스를 움직이게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TF1은 하나의 권력 집단화됨으로써 방송을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정치에 종속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 Liberation 신문의 미디어 전문기자 Isabelle Robertz와 주간지 Telerama의 Valerie Hurier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실제 TF1의 사주 Bouygues 그룹은 항상 좌파든 우파든 현 정권에 우호적인 친정부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대선 때마다 여론 지지율이 제일 높은 후보를 지지한다. Bouygues 그룹은 프랑스에서 재계순위 12번째 회사이므로 그 파워를 유지하려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야 하며, 현 정부와 항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가까운 사람이 정권을 잡고 있어야 한다. 결코 공영방송 보도국에 비해 더 독립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 Isabelle Robertz
"언뜻 보면 TF1이 민영이라 정부의 영향을 덜 받아 기자들이 공영방송에 비해 더 독립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TF1은 사기업이고 광고비로만 먹고 사는 그들로서는 기업경제에 무척 민감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등을 지고 살 순 없다. 공영방송 기자들과는 다른 형태로 정치계에 묶여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누가 더 독립적이라고 자로 재기 어렵다."
- Valerie Hurier
TF1의 민영화는 분명히 정치권력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을 상징하는 조치였지만, 그 이후 TF1 자체가 아무런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개인인 프랑시스 부이그의 권력 도구가 되어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민영화는 곧 자본에 의한 미디어의 통제 및 미디어의 권력 기구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Isabelle Robertz와 Valerie Hurier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지금의 TF1사주인 bouygues 건축 그룹은 너무나 커졌다. 파워가 너무 강해서 방송위원회도 견제하기에 급급하다. 일부 준수사항에 문제가 있어도 계속 송출허가를 내준다. 민영화 당시 반대했던 전 총리 Lionel Jospin을 비롯하여 좌파정치인들도 정권을 잡으면 다시 공영화 시키겠다고 공약을 했으나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현재도 TF1의 공영화는 아무도 이야기 안 한다. 지금 Bouygues 그룹 회장인 Martin Bouygues는 현 대통령 Sarkozy와 절친한 친구다. TF1의 앞날은 탄탄하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정치인들도 방송과 등을 지고는 유명정치인이 되기 힘들다. 대선이나 총선 시 선거특별방송을 보면 유명 정치인들은 공영방송인 France2 혹은 France3 보다는 TF1에 먼저 나가려고 한다. TF1과 정치인들과의 공생관계는 튼튼하다."
- Isabelle Robertz
“TF1의 사주 Bouygues 그룹은 무척 큰 회사이다. 그 때문에 그들의 비즈니스 제국을 유지 시키려면 언론이 필요했고, 그래서 TF1을 인수했으며, 프랑스 1위의 채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정치계에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날 TF1을 다시 공영화 한다든지 비위를 건드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 Valerie Hurier
공영방송의 정체성 상실 초래
TF1의 민영화에 따른 방송사간 과열 경쟁은 공영방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과다한 광고유치와 시청률 경쟁 속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것은 프랑스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코 공영방송이 시청률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좁은 의미만은 아니다. 민영방송들과 맞서면서 공영방송의 시청률이 하락한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보다는 과열경쟁의 시대에 공영방송이 스스로의 역할과 위상, 향후 발전 방향과 관련된 총체적 전망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공영방송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개입’하게 된 국가 또한 해답을 찾기 위해 10년 이상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제는 풀기 힘든 과제로 남아 있다.
1989년 프랑스의 방송위원회인 CSA가 출범하면서, CSA는 가장 먼저 공영방송 전체의 비전을 모색하는 일을 추진하며, 공영방송 A2와 FR3의 사장 인선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CSA는 민영화 이전에 TF1의 상업적 성공 기틀을 마련했던 에르베 부르주(Hervé Bourges)에게 양사를 총괄하는 사장직을 맡겼다. 공영방송의 새로운 책임자 에르베 부르주는 당시 벌어지고 있던 채널 간 경쟁에서 공영방송이 승리하는 방식만이 공영방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부르주는 먼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공영방송에 광고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는 그동안 방송광고를 사실상 독점하던 TF1과 “광고 없는 텔레비전"을 주창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등의 지식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결국 1989년에 실현되었다.
광고는 A2와 FR3의 주 시청 시간대에 본격적으로 편성되기 시작하였다. 광고의 유입과 더불어 공영 채널에서 마저 다큐멘터리, 시사 토론처럼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 대신 각종 매거진, 오락 프로그램이 주 시청 시간대를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지식인들은 공영방송을 공영방송이 아닌 “국가 상업 방송”이라고 비판하였다.
이 후에도 프랑스 공영방송은 민영방송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나, 90년대 초반 걸프전 보도에 있어서도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은 TF1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프랑스 공영방송의 민영방송과의 경쟁정책은 이중적인 의미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먼저, 공영방송의 적극적인 경쟁력 제고 전략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내내 공영방송과 TF1의 시청률 격차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1987년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공영방송의 시청자 점유율은 절반가량으로 대폭 후퇴하였으며, 광고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비극적인 결과는 공영방송이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채널 정체성과 미래의 비전을 상실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편성과 프로그램 수준의 측면에서 공영방송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하면서, 그에 비례해 시청자들의 불만은 계속 높아만 갔다. 물론 거기에는 공영방송에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이 정작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을 외면한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만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주 시청 시간대의 유사한 오락 프로그램만을 본다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차이를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