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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디어연구소 No.9]정보통신망법 개정의 ‘비극’과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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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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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디어연구소] 주간 정책 브리핑 No.9
<미디어 초점 리뷰>
정보통신망법 개정의 ‘비극’과 ‘희극’
어느 걸출한 역사학자가 그랬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이 이런 운명이다. 첫 번째 ‘비극’은 2007년 5, 6월에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며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규정했던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온갖 제도들이 제대로 된 토의 한 번 없이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기 때문이다.
조만간 두 번째 ‘희극’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른바 ‘제한적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개인정보 보관기간을 연장하는 게 핵심이다. 이 공청회의 패널에는 정보인권단체 대표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본인확인제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단체들의 대표는 배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공청회에서는 패널 5명 가운데 3명이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는 공청회에서 소개된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다. 첫 번째 비극이 벌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변변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개정될 위험성이 높은데다, 이런 ‘희극’이 낳을 상황이 전혀 희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본인확인제 확대의 파장은 해당 사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사적 검열’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고 판단한다. ‘사적 검열’이 언론 기능을 수행하는 포털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본인확인제가 적용되는 모든 사이트의 의무사항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두 번째 ‘희극’의 시작
방통위가 입법예고한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은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의 전면 확대를 특징으로 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제30조는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을 세 가지의 유형의 정보통신서비스에 국한하고 있다. 포털 서비스(다른 인터넷주소․정보 등의 검색과 전자우편․커뮤니티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 UCC 사이트를 의미하는 전문손수제작물매개서비스(이용자가 직접 만든 디지털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매개하는 서비스), 인터넷언론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포털과 UCC 사이트의 경우 전년 말 기준 3개월 동안 일일평균 이용자 수가 30만명 이상, 인터넷 언론의 경우 20만명 이상인 사이트가 대상이다.
반면, 개정안은 본인확인제 적용 사이트를 세 가지 유형에서 모든 유형으로 전면 확대했다. 일일평균 이용자 수 역시 10만명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이를 통해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은 37개(포털 16개, UCC 6개, 인터넷언론 15개) 사이트에서 268개 사이트로 대폭 늘어난다. 적용 대상 이용자 수도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51.5%에서 74.5%로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인터넷 전반에 본인확인제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전면 확대의 형식적 명분은,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모법의 위임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곧 2007년 본인확인제가 도입될 당시, 정보통신망법에서 공공기관 및 일일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으로 하면서 적용 대상 서비스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만큼, 시행령 역시 이렇게 개정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7년 5, 6월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열린우리장 지배의 국회에서 자행된 정보통신망법 개악은 매우 깊고도 넓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두 번째 ‘희극’의 문제점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가 갖는 핵심 문제점에 대해 정동훈 광운대 조교수(미디어영상학부)는 다음과 지적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사전검열시스템인 인터넷 실명제, 제한적 본인 확인제, i-pin제도 등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익명성이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원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자를 예비 범죄자로 인식하는 인권의 문제, 사전 검열제, 그리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익명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술적으로 IP 주소를 통해 이용자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다 점은 사전검열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실명제 내지는 본인확인제와 같이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검열 제도는 위헌적 요소이기 때문에 실시되면 안될 것”이다.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 역시 인터넷에 대한 사전 검열 장치를 둬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확인한 바 있음 …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공중파 방송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 수용자 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어, 인쇄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2002. 6. 27. 99헌마480)
첫 번째 ‘비극’의 전말
2007년 5, 6월 개정을 통해 정보통신망법에 도입된 본인확인제나 임시삭제 조치 등과 같은 제도는 같은해 7월27일 발효했다. 본인확인제의 경우 정보통신망법 개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회은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상임위 (정보통신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유일하게 금년 5월 회의록에서 변재일 의원이 경과에 대해서 보고하는 내용만 있다. 2007년 5월 게시판 실명제가 정부법안으로 제출된 이래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모두 합해 게시판 실명제는 단 한 번 토의조차 된 적이 없다. 무슨 엄청난 사회적 지지와 입법취지가 있어 통과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본인확인제 도입이 부실한 논의 속에 이뤄졌다고 한다면, 게시물의 임시삭제 조치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광범위한 사적 검열 의무 부과는 옛 정보통신부의 ‘왜곡’과 ‘꼼수’ 속에 도입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2항은,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주장만 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제44조의2 제4항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해당 정보나 게시물에 대한 접근을 임시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법 제44조의2 제6항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게시물을 반드시 삭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임시 차단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받거나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삭제나 접근 임시 차단을 의무화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옛 정보통신부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왜곡과 꼼수
이들 조항은 모두 2007년 5, 6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이들 제도의 도입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가 바로 2005년이다. 이해 12월 옛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이용자의 요청이 없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선의로 게시판 정보를 임시적으로 차단할 경우, 이로 인한 배상책임을 면제받는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마련해 여론수렴 작업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해 마련된 개정안은 2007년 5, 6월 정보통신망법 개정 내용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은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게시판 정보로 법률상 피해를 입은 이용자가 삭제를 요청할 경우, 법적 최종판단 이전에 해당 정보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으며, 굳이 요청이 없더라도 선의로 게시판 정보를 삭제한 경우에도 배상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12월 당시 옛 정보통신부는 1996년 2월 제정된 미국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 Act)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사이버 명예훼손, 언어폭력 등에 대한 피해구제에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미국과 같은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옛 정보통신부 담당자와 책임자들은 미국 통신품위법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내세우면서,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누락시켰다. 미국 통신품위법 제230조의 제목은 ‘침해성 내용물의 사적 차단 및 선별 행위에 대한 보호’(Protection for private blocking and screening of offensive material)이다. 이 조의 C항은 ‘침해성 내용물의 선의의 차단 및 선별 행위에 대한 보호’(Protection for “Good Samaritan” blocking and screening of offensive material)에 관한 내용인데, 크게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ISP와 포털 등에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규정이다.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interactive computer service)의 제공자나 그 이용자는 제3의 정보 콘텐츠 제공자가 생산한 정보의 발행자나 발언자로 취급돼선 안 된다.” 이는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 제공자와 그 이용자’(우리나라로 치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그 이용자)에게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곧,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 제공자와 그 이용자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문제가 되는 콘텐츠의 생산이나 발전 과정에 이들이 직접 개입돼 있거나,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잘못, 이를테면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위반 등에 대해 명확한 통지를 받은 뒤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등 매우 제한적이다.
다른 하나가, ‘중립적 전달자’ 지위 규정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이다. 이 규정은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interactive computer service)의 제공자나 그 이용자는,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외설스럽고, 음란하고, 선정적이고, 추잡하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이거나 기타 반대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선의로 제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취한 행동을 이유로 책임을 져선 안 된다”고 돼 있다.
결국, 미국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 제공자가 정보의 발행자(publisher)나 발언자(speaker)로 취급돼선 안 된다는 중립적 전달자 지위 보장을 기본으로 하면서, 이들 제공자가 선의에 따라 자발적으로 취한 침해성 내용물의 접근 제한 행위에 대한 면책을 부여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옛 정보통신부는 통신품위법의 전체 맥락에서 ‘선의에 의한 자발적 접근 제한’을 특권화시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광범위한 사적 검열을 부추기는 쪽으로 정보통신망법을 개악하는 데 이용했다. 중립적 전달자 지위 보장이라는 통신품위법의 기본 맥락을 아예 누락시킨 것이다. 옛 정보통신부가 통신품위법 제230조를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설명하지 않는 한, 이는 의도적인 ‘왜곡’이자 ‘꼼수’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맥락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거의 범죄 행위나 마찬가지다.
국내 언론 역시 옛 정보통신부의 이런 왜곡과 꼼수를 견제하는 데 실패했다. 2005년과 2006년 포털의 폐해에만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옛 정통부가 인터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자행한 술수는 미처 예방하지 못한 것이다.
‘포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 ‘비극’의 빌미도, 두 번째 ‘희극’의 시작도 모두가 포털이 출발점이다. 인터넷 일반에 대한 규제제도가 확장하는 촉매 구실을 포털이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포털은 ‘중립적 전달자’가 아니다. 누가 봐도 명백히 언론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통신품위법의 표현을 빌리면, 정보의 발행자(publisher)나 발언자(speaker)에 해당한다. 따라서 “포털은 미디어의 기능에 관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지금과 같이 선별적 언론사와 기사 등을 자의에 의해 배치하며 언론사로 자리매김 하든지, 아니면 어떠한 인위적인 작업을 거치지 않음으로 해서 순수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로 남든지가 그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예에서 보면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통제의 역할을 하고(미국), 전달되는 정보 수신자를 선별해서는 안되며 전달되는 정보를 선별하지 않거나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독일)을 충족시킬 때만 OSP가 책임을 면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 한국의 포털 역시 이러한 면책조항을 명시함으로써 포털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국내 포털에 대한 법적 규제는 정보통신망법에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보장하는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함을 뜻한다. 그래야 포털을 매개로 하여 인터넷 전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광범위한 사적 검열을 부추겨 사이버 공간을 식민화시키는 현 정권의 정책에 제대로 맞설 수 있다는 게 연구소의 판단이다.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지난 7월 현 정권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법유해정보 신고센터' 운영을 강제하는 쪽으로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겠다고 했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법정보 관리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충실히 사적 검열을 수행하는지를 수시로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와 모든 웹사이트로의 사적 검열 확산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돼 있다.
포털은 분명히 문제다. 언론 기능을 수행하면서,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내세우는 윤리의 '이중성'까지 보인다. 하지만 더욱 큰 '몸통'은 정보통신망법이다. 이것이 바로잡혀야 포털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의 한 축은 옛 정보통신부가 180도 뒤집어버린 맥락을 바로잡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 지위에 해당하는 요건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게시물 삭제 등에 사법적 판단을 의무화시키는 것이다. 신속한 판단을 위해 사법부 산하에 인터넷 법정과 기관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포털처럼 굴복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제2의 아고라’를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세력이 함께 구축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초점 리뷰>
정보통신망법 개정의 ‘비극’과 ‘희극’
어느 걸출한 역사학자가 그랬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이 이런 운명이다. 첫 번째 ‘비극’은 2007년 5, 6월에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며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규정했던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온갖 제도들이 제대로 된 토의 한 번 없이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기 때문이다.
조만간 두 번째 ‘희극’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른바 ‘제한적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개인정보 보관기간을 연장하는 게 핵심이다. 이 공청회의 패널에는 정보인권단체 대표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본인확인제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단체들의 대표는 배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공청회에서는 패널 5명 가운데 3명이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는 공청회에서 소개된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다. 첫 번째 비극이 벌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변변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개정될 위험성이 높은데다, 이런 ‘희극’이 낳을 상황이 전혀 희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본인확인제 확대의 파장은 해당 사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사적 검열’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고 판단한다. ‘사적 검열’이 언론 기능을 수행하는 포털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본인확인제가 적용되는 모든 사이트의 의무사항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두 번째 ‘희극’의 시작
방통위가 입법예고한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은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의 전면 확대를 특징으로 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제30조는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을 세 가지의 유형의 정보통신서비스에 국한하고 있다. 포털 서비스(다른 인터넷주소․정보 등의 검색과 전자우편․커뮤니티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 UCC 사이트를 의미하는 전문손수제작물매개서비스(이용자가 직접 만든 디지털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매개하는 서비스), 인터넷언론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포털과 UCC 사이트의 경우 전년 말 기준 3개월 동안 일일평균 이용자 수가 30만명 이상, 인터넷 언론의 경우 20만명 이상인 사이트가 대상이다.
반면, 개정안은 본인확인제 적용 사이트를 세 가지 유형에서 모든 유형으로 전면 확대했다. 일일평균 이용자 수 역시 10만명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이를 통해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은 37개(포털 16개, UCC 6개, 인터넷언론 15개) 사이트에서 268개 사이트로 대폭 늘어난다. 적용 대상 이용자 수도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51.5%에서 74.5%로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인터넷 전반에 본인확인제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전면 확대의 형식적 명분은,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모법의 위임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곧 2007년 본인확인제가 도입될 당시, 정보통신망법에서 공공기관 및 일일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으로 하면서 적용 대상 서비스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만큼, 시행령 역시 이렇게 개정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7년 5, 6월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열린우리장 지배의 국회에서 자행된 정보통신망법 개악은 매우 깊고도 넓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두 번째 ‘희극’의 문제점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가 갖는 핵심 문제점에 대해 정동훈 광운대 조교수(미디어영상학부)는 다음과 지적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사전검열시스템인 인터넷 실명제, 제한적 본인 확인제, i-pin제도 등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익명성이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원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자를 예비 범죄자로 인식하는 인권의 문제, 사전 검열제, 그리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익명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술적으로 IP 주소를 통해 이용자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다 점은 사전검열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실명제 내지는 본인확인제와 같이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검열 제도는 위헌적 요소이기 때문에 실시되면 안될 것”이다.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 역시 인터넷에 대한 사전 검열 장치를 둬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확인한 바 있음 …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공중파 방송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 수용자 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어, 인쇄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2002. 6. 27. 99헌마480)
첫 번째 ‘비극’의 전말
2007년 5, 6월 개정을 통해 정보통신망법에 도입된 본인확인제나 임시삭제 조치 등과 같은 제도는 같은해 7월27일 발효했다. 본인확인제의 경우 정보통신망법 개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회은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상임위 (정보통신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유일하게 금년 5월 회의록에서 변재일 의원이 경과에 대해서 보고하는 내용만 있다. 2007년 5월 게시판 실명제가 정부법안으로 제출된 이래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모두 합해 게시판 실명제는 단 한 번 토의조차 된 적이 없다. 무슨 엄청난 사회적 지지와 입법취지가 있어 통과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본인확인제 도입이 부실한 논의 속에 이뤄졌다고 한다면, 게시물의 임시삭제 조치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광범위한 사적 검열 의무 부과는 옛 정보통신부의 ‘왜곡’과 ‘꼼수’ 속에 도입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2항은,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주장만 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제44조의2 제4항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해당 정보나 게시물에 대한 접근을 임시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법 제44조의2 제6항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게시물을 반드시 삭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서 임시 차단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받거나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삭제나 접근 임시 차단을 의무화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옛 정보통신부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왜곡과 꼼수
이들 조항은 모두 2007년 5, 6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이들 제도의 도입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가 바로 2005년이다. 이해 12월 옛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이용자의 요청이 없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선의로 게시판 정보를 임시적으로 차단할 경우, 이로 인한 배상책임을 면제받는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마련해 여론수렴 작업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해 마련된 개정안은 2007년 5, 6월 정보통신망법 개정 내용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은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게시판 정보로 법률상 피해를 입은 이용자가 삭제를 요청할 경우, 법적 최종판단 이전에 해당 정보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으며, 굳이 요청이 없더라도 선의로 게시판 정보를 삭제한 경우에도 배상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12월 당시 옛 정보통신부는 1996년 2월 제정된 미국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 Act)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사이버 명예훼손, 언어폭력 등에 대한 피해구제에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미국과 같은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옛 정보통신부 담당자와 책임자들은 미국 통신품위법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내세우면서,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누락시켰다. 미국 통신품위법 제230조의 제목은 ‘침해성 내용물의 사적 차단 및 선별 행위에 대한 보호’(Protection for private blocking and screening of offensive material)이다. 이 조의 C항은 ‘침해성 내용물의 선의의 차단 및 선별 행위에 대한 보호’(Protection for “Good Samaritan” blocking and screening of offensive material)에 관한 내용인데, 크게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ISP와 포털 등에 ‘중립적 전달자’(neutral carrier)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규정이다.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interactive computer service)의 제공자나 그 이용자는 제3의 정보 콘텐츠 제공자가 생산한 정보의 발행자나 발언자로 취급돼선 안 된다.” 이는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 제공자와 그 이용자’(우리나라로 치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그 이용자)에게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곧,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 제공자와 그 이용자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문제가 되는 콘텐츠의 생산이나 발전 과정에 이들이 직접 개입돼 있거나, 자신의 정보통신망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잘못, 이를테면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위반 등에 대해 명확한 통지를 받은 뒤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을 때 등 매우 제한적이다.
다른 하나가, ‘중립적 전달자’ 지위 규정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이다. 이 규정은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interactive computer service)의 제공자나 그 이용자는,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외설스럽고, 음란하고, 선정적이고, 추잡하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이거나 기타 반대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선의로 제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취한 행동을 이유로 책임을 져선 안 된다”고 돼 있다.
결국, 미국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쌍방향 컴퓨터 서비스 제공자가 정보의 발행자(publisher)나 발언자(speaker)로 취급돼선 안 된다는 중립적 전달자 지위 보장을 기본으로 하면서, 이들 제공자가 선의에 따라 자발적으로 취한 침해성 내용물의 접근 제한 행위에 대한 면책을 부여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옛 정보통신부는 통신품위법의 전체 맥락에서 ‘선의에 의한 자발적 접근 제한’을 특권화시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광범위한 사적 검열을 부추기는 쪽으로 정보통신망법을 개악하는 데 이용했다. 중립적 전달자 지위 보장이라는 통신품위법의 기본 맥락을 아예 누락시킨 것이다. 옛 정보통신부가 통신품위법 제230조를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설명하지 않는 한, 이는 의도적인 ‘왜곡’이자 ‘꼼수’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맥락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거의 범죄 행위나 마찬가지다.
국내 언론 역시 옛 정보통신부의 이런 왜곡과 꼼수를 견제하는 데 실패했다. 2005년과 2006년 포털의 폐해에만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옛 정통부가 인터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자행한 술수는 미처 예방하지 못한 것이다.
‘포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 ‘비극’의 빌미도, 두 번째 ‘희극’의 시작도 모두가 포털이 출발점이다. 인터넷 일반에 대한 규제제도가 확장하는 촉매 구실을 포털이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포털은 ‘중립적 전달자’가 아니다. 누가 봐도 명백히 언론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통신품위법의 표현을 빌리면, 정보의 발행자(publisher)나 발언자(speaker)에 해당한다. 따라서 “포털은 미디어의 기능에 관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지금과 같이 선별적 언론사와 기사 등을 자의에 의해 배치하며 언론사로 자리매김 하든지, 아니면 어떠한 인위적인 작업을 거치지 않음으로 해서 순수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로 남든지가 그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예에서 보면 적극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통제의 역할을 하고(미국), 전달되는 정보 수신자를 선별해서는 안되며 전달되는 정보를 선별하지 않거나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독일)을 충족시킬 때만 OSP가 책임을 면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다. 한국의 포털 역시 이러한 면책조항을 명시함으로써 포털이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국내 포털에 대한 법적 규제는 정보통신망법에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보장하는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함을 뜻한다. 그래야 포털을 매개로 하여 인터넷 전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광범위한 사적 검열을 부추겨 사이버 공간을 식민화시키는 현 정권의 정책에 제대로 맞설 수 있다는 게 연구소의 판단이다.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지난 7월 현 정권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법유해정보 신고센터' 운영을 강제하는 쪽으로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겠다고 했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법정보 관리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충실히 사적 검열을 수행하는지를 수시로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본인확인제 전면 확대와 모든 웹사이트로의 사적 검열 확산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돼 있다.
포털은 분명히 문제다. 언론 기능을 수행하면서,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내세우는 윤리의 '이중성'까지 보인다. 하지만 더욱 큰 '몸통'은 정보통신망법이다. 이것이 바로잡혀야 포털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의 한 축은 옛 정보통신부가 180도 뒤집어버린 맥락을 바로잡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중립적 전달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 지위에 해당하는 요건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게시물 삭제 등에 사법적 판단을 의무화시키는 것이다. 신속한 판단을 위해 사법부 산하에 인터넷 법정과 기관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포털처럼 굴복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제2의 아고라’를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세력이 함께 구축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